행궁동 로컬 뉴스레터 7회: 스크린에 비친 행궁동
전 세계 시청자를 끌어모으고 있는 K-드라마가 행궁동을 K-드라마의 대표 촬영지로 만들었다. 예전엔 사극을 보조하던 공간이 이제 드라마틱한 주인공이 된 것이다. 글로벌 2억 명 시청자들의 시선, 과연 상인들에게도 새로운 기회일까? OTT가 불러온 이 파도를 올라타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모두가 함께 행궁동을 브랜드로 만들어 각각의 ‘행궁동스러운’ 감동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 넷플릭스는 2억 명이 우리를 주목 하는 중 이다.
행궁동 한복판을 거닐다 보면, 외국인의 발걸음이 이전보다 부쩍 늘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글로벌 히트작 “선재 업고 튀어”나 최근 넷플릭스 국내 1위를 석권한 “멜로 무비”와 같은 K-드라마의 글로벌 인기가 이어지면서, 이곳 골목까지 해외 관광객들의 시선이 닿는 풍경이 익숙해졌다. 과거에 ‘사극 촬영지’ 정도로만 여겨지던 행궁동은 이제 드라마뿐 아니라 한층 넓어진 문화적 의미를 담아내며,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채널에서 방영되는 드라마가 단순한 로케이션을 넘어, 행궁동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주목해보자.
1. 행궁동, 조연에서 주인공이 되다
주요 키워드
- 고도 제한
- 역지사지

행궁동이 유독 드라마 제작진의 ‘픽’이 되는 데에는 야트막한 지붕 라인과 도심 속 탁 트인 하늘이라는 매력이 작용한다.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적용된 고도 제한 덕분에, 밋밋할 수 있는 저층 주택가가 오히려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골목 곳곳에 남아 있는 옛 한옥과 현대적으로 개조된 주택이 공존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허무는데, 이 독특한 시간의 층위가 드라마 속 감정선을 풍부하게 만든다. “선재 업고 튀어”의 행궁동 골목 끝에 자리 잡은 붉은 벽돌 집 앞에서 솔이가 선재에게 우산을 씌워 주는 장면처럼 말이다. 오래된 집 특유의 정겨움에, 도시재생을 거쳐 탄생한 독특한 감성의 카페와 편집숍이 어우러졌을 때 빚어지는 ‘행궁동스러운’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전해준 것이다.
실제 촬영지였던 화성행궁의 고즈넉한 전경이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서정미가 극대화된 성곽길 역시 드라마 속에서 일상의 풍경 이상으로 커다란 존재감을 발휘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한 장면에서 벚꽃이 우수수 쏟아지는 남포루 풍경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은 해외 시청자들에게 ‘꼭 가보고 싶은 봄 여행지’로 각인되었다. 가지각색의 장소가 모여 있는 행궁동은, 결국 그 자체로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되어 극 전체를 빛나게 하는 것이다.
최근 약 10년에 걸쳐 이곳이 빠른 속도로 도시재생과 관광 상권을 형성해온 과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옥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나 레트로 감성의 음식점이 늘어나면서, MZ세대에게는 ‘새로운 핫플’로 떠올랐고 해외 관광객들에게는 ‘낯설지만 이국적인 분위기가 담긴 곳’이 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의 일상과 역사, 감성, 그리고 세대적 트렌드가 한데 어우러진 결과물이 바로 행궁동이란 공간이며, 그 매력을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다시 전 세계로 확장시키고 있는 셈이다.
2. K-드라마 타임라인에서 살펴본 행궁동: 사극에서 OTT까지
주요 키워드
- 보조 촬영지
- 대체 불가

사극이나 시대극에서 등장한 행궁동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2000년대 초반 “대장금”과 “이산” 때만 해도 이곳은 용인 민속촌이나 전주 한옥마을을 대신할 만한 ‘보조 촬영지’였다. 주로 궁궐 내부나 한적한 배경이 필요한 장면에 적절하게 쓰였으나, 촬영 범위가 골목과 성곽을 넘나드는 수준은 아니었다. 실제로는 화성행궁의 일부만 활용하는 정도에 그쳤고, 행궁동에게 사극 촬영 팀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손님’으로만 인식되곤 했다.




<출처: "스물다섯 스물하나" tvN(1), "구르미 그린 달빛" KBS(2), "그 해 우리는" SBS(3), "경이로운 소문" OCN(4)>
하지만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청춘 로맨스와 학원물 등 현대극이 이곳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학교 2017” 이후 성곽길 주변과 행궁동 골목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면서, ‘정통사극’에 특화된 장소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현대의 일상을 포착하기 좋은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또한, “구르미 그린 달빛”은 사극 임에도 현대적 감성으로 극을 다채롭게 만들면서, 화성행궁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러한 다채로움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적극 활용해 시청자들에게 ‘고전미와 현대 감성의 조화’를 선보였다.

그리고 2020년대 들어서는 드라마의 장르가 더욱 확장되는 동시에, 글로벌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행궁동은 ‘보조’ 이상의 메인 무대가 되었다. “선재 업고 튀어”처럼 행궁동 전체를 무대로 스토리가 펼쳐지는 작품이 등장했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매회 행궁동 김밥집에서 좌충우돌했다. 최근 “멜로 무비”에서 보여주는 감각적인 연출은 실제 식당을 거의 그대로 활용하면서 해외 시청자에게도 인상 깊은 모습을 심어 주었다. K-드라마가 전 세계 시청자의 취향을 겨냥하는 시대가 되면서, 행궁동은 그 자체로 전통과 현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독보적인 공간성을 인정받았다. 성곽과 한옥, 카페골목, 옛스러운 골목길 등에 담긴 다채로운 풍경이 곧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압축해 보여주는 대표 아이콘이 된 것이다.
3. 넷플릭스의 영향력: 글로벌 시청자가 찾아오는 행궁동
주요 키워드
- 아시아 태평양 시장
- 흑백요리사

넷플릭스의 총 가입자는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8,272만 명에 달한다. 이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뜻이며, 시청자들의 취향과 여행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국을 찾는 주요 방문객(상위 10개국)의 국적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아시아권 국가임을 알 수 있다(미국 제외). 이는 실제로 아시아 지역 소비자들이 K-콘텐츠를 가장 적극적으로 즐기고, 동시에 오프라인 여행의 목적지로 한국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넷플릭스 구독자는 5,260만 명이고, 북미의 구독자 수가 8,480만 명 규모인 것을 고려하면, 결국 탑 10 여행객 구성이 ‘아시아+북미’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즉, 이 두 지역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한국 드라마가 나온다면, 해외 시청자들이 실제 촬영지를 찾아올 확률 또한 크게 높아진다는 의미다. 최근 넷플릭스는 2024년 3분기 주주 서한을 통해 아시아 지역, 그중에서도 한국과 태국, 인도 로컬 콘텐츠의 성과가 매우 뛰어나며, "흑백요리사(Culinary Class Wars_11,000만 뷰)"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뉴스레터에서 다룬 바와 같이, 수원이 ‘미식 도시’로서 가지는 장점과 마침 맞물려, “흑백요리사(Culinary Class Wars)”에 출연했던 쉐프가 수원에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 해외 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행궁동으로 쏠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4. 해외 사례에서 배우는 로컬과 콘텐츠의 시너지
주요 키워드
- 기후현 히다시
- 콘텐츠 관광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기 드라마가 행궁동에서 촬영되어 잭팟을 터트릴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 신기하다”는 반응만 반복해왔다. 물론 이곳에 지속적으로 ‘대박 드라마’가 이어진다는 건 운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 드라마 러시가 한풀 꺾이거나, 다른 지역으로 관심이 옮겨갈 수 있다는 점도 대비해야 한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성공 가능성을 한껏 높여주는 도약대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포화된 콘텐츠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면 쉽게 잊혀질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따라서 행궁동 상인들과 지역 커뮤니티가 할 일은 드라마를 만나는 ‘짧은 운(運)’을 ‘긴 운(韻)’으로 이어가는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다.

콘텐츠와 촬영지의 연계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연출된 화면과 실제 공간을 연결해주는 ‘체험 요소’가 필요하다. 드라마는 아니지만, 가까운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과 지역을 연결해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 대표적이다. 평범한 지방 도시인 히다시는 애니메이션의 흥행 초기에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사실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자 팬들의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고, 지자체와 주민, 민간 업계가 이를 적극 수용하고 체계적으로 시스템화하면서 지금의 팬들에게 성지가 되었다.

히다시 행정과 지역 상인들은 공식 관광 사이트에서 작품 속 장면과 실제 촬영지를 이어주는 코스를 제안하고, 유명 장면의 배경이 된 언덕이나 신사를 방문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열었다. 또한, 트립어드바이저 리뷰나 SNS 바이럴을 통해 이 조용한 시골 마을이 충실하고 친절하게 ‘성지순례’를 도와주고 있다는 인상이 퍼지면서, 해마다 다시 찾는 여행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데이터 출처: 키타 와카미야 신사 리뷰_트립어드바이저). 결과적으로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가져왔던 팬심이 도시 전반에 스며들어, 특정 카페나 기념품 가게의 매출 상승부터 숙박 시설의 장기적인 활성화까지 이어진 것이다.
행궁동도 , 단순 촬영지 홍보를 넘어 콘텐츠 애호가들의 감성을 제대로 건드릴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선재 업고 튀어”에서 화성 성곽길을 뛰어다니는 장면에 매료된 해외 팬들이 직접 그 길을 걸어볼 수 있도록 체험 코스를 마련한다면 어떨까?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이 자주 다녔던 포장마차나 식당을 상인들과 협력해 ‘드라마 스팟’으로 조성하고, 실제 메뉴나 소품을 활용한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해외에서 찾아온 시청자들은 그 별다른 장치 하나에 큰 감동을 받는다. “내가 TV 화면으로만 보던 그 느낌을 현장에서 그대로 느꼈다”는 특별한 체험은, 단순히 ‘여기서 촬영했대’ 정도로만 읊어주는 설명보다 훨씬 강력한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또한, 행궁동의 로컬 상인들이 이러한 관광객을 맞이할 때, 드라마 이야기로 가볍게 대화를 틔우는 것만으로도 방문객의 만족도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혹시 이 골목 아세요? 임솔이 여기서 첫사랑을 고백했거든요.”라며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고, 가게마다 작은 포스터나 장면 스틸컷을 전시해 간단히 분위기를 살릴 수도 있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외국인 관객이라면, 드라마 장면을 캡처한 팸플릿이나 다국어 브로슈어를 건네줄 수도 있겠다.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결국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촬영지에서 벗어나, 재미와 추억, 그리고 스토리텔링이 살아 숨 쉬는 장소로 거듭나는 것이 기후현 히다시 사례의 핵심이자, 행궁동이 참고해야 할 지점이다.
최근 지방 소도시나 골목 상권들이 대거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콘텐츠 관광’은 지역 경제 재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돌파구로 부상하고 있다. 행궁동 역시 이미 훌륭한 작품들이 촬영되었고,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과연, 한철 반짝하는 이슈로 끝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콘텐츠 파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와 지역 상인, 그리고 주민 모두가 콘텐츠의 잠재력을 공유하고, 구체적인 실행 프로젝트에 힘을 모아야 한다. 히다시가 보여준 사례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콘텐츠를 사랑하는 팬들의 열정과, 이를 놓치지 않고 살려내려는 지역의 노력이 만나면, 주인공이 된 행궁동 골목길이 조금 더 오래 주연으로 활동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치며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행궁동이라는 작은 동네가 어떻게 넷플릭스라는 거대 플랫폼을 타고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예전에는 사극 촬영지로서 잠깐 등장하는 조연 역할에서 머물렀지만, 이제는 드라마 전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이 된 양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곳이 제공하는 색다른 시간감각, 대조적인 공간미, 그리고 옛스럽지만 결코 낡아 보이지 않는 살아 있는 골목 풍경이 드라마 속 캐릭터의 감정에 더욱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들은 이런 로컬의 가치를 제대로 조명해 주는 무대가 되었고, 전 세계 2억명의 시청자들이 행궁동 특유의 감성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한국을 찾고 있다.
이 말이 농담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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